20대 초반 잠깐 영화 감독을 꿈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. 그 때는 매일 세 편씩 의무적으로 영화를 봤습니다. 부모님께는 학교 가는 척 집 나와서 평일 사람도 별로 없는 영화관에서 그 시기 개봉한 영화들은 거진 다 본 듯싶습니다. 영화 감상 외엔 딱히 하는 일도 없었던지라 그때는 영화관에서 조는 사람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. ‘잠은 집에서 자면 되지 뭣하러 아까운 돈 내고 영화관에서 자나.’ 이런 생각이었죠.
그러던 저도 직장생활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영화가 조금만 지루해도 어김없이 졸기 시작했습니다. 학생 때는 맑은 정신으로 영화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는데 삶의 무게가 눈꺼풀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입니다. 30대가 돼서는 상태가 더 심해져서 영화 보다가 조는 경우가 안 조는 경우보다 더 많아졌습니다. 결국 지금은 압도적인 스케일이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일상생활과 전혀 다른 간접경험을 하게 해주는 영화를 제외하고는 두세 시간 투자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습니다.
이유를 생각해보니 저는 영화보다 현실이 더 다이나믹하고 재미있습니다. 영화는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은 저의 이야기입니다. 이전 사업으로 진 빚 갚느라 허덕인 거.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 열심히 해서 예정일보다 훨씬 빨리 갚아낸 거. 코로나로 국경 막힌 상태에서 어떻게든 리모트로 한국 개인사업자로 시작해서 법인 내고 중국에 지사까지 오픈한 거. 모두 제 자신의 이야기입니다. 간접경험이 아니라 직접경험이다 보니 더 짜릿할 수밖에 없습니다.
앞으로는 제 개인의 이야기뿐 아니라 ECOM-US의 일원으로 하는 우리의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. 우리가 ECOM-US를 이러이러하게 성장시켰다, 우리가 ECOM-US에 어떤 문화를 만들었다, 우리가 함께 어려운 시기들을 극복해 냈다.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개인사업자로 진행하던 계약들을 이번 한국 방문 중 전부 법인으로 옮길 계획입니다. 호러 영화보다도 현실이 더 두려운 경우도 종종 있지만 어쨌거나 저는 현실을 사는 게 훨씬 재밌습니다.
<사진 = 픽사베이>